
일단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약간 고개를 떨구고 겸연쩍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든다.
그런데 이미 결혼을 했어요. 그래서 그냥 좋아하고만 있죠. 적어도 그건 법적으로 문제는 없으니까요.
새로운 모임의 장소에서 내게 날아오는 질문 중, 나는 여자친구가 왜 없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상대는 내 말의 진위 여부를 살피려고 잠시 말을 멈추거나 농담 말라는 식으로 손을 가로저으며 웃는다. 어느 쪽이든 나는 상관이 없다. 내가 한 말이 사실이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나는 여자친구가 없으니까. 그게 사실이다.
내가 기업에 입사할 때 보았던 면접관에게 우리 세대에 이야기해보라는 말을 들었다.
나와 나의 친구들은, 개인의 퍼스낼리티와 퍼블릭 마인드가 충돌하는 첫 세대입니다. 이전까지 그 둘 중은 하나가 맞으면 다른 쪽을 틀린다는 식이었습니다만 우리 세대는 다릅니다. 둘 다 참일 수도 둘 다 거짓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의 관점이란 이미 사라져버렸으니까요.
잘은 기억할 수 없지만, 뭐 그런 이야기를 장황하게, 장화하게 이야기 하다 보니 황당하게 되었고, 면접관들은 황당했을 것이다. 그 중 한 면접관이 나를 노려보았다. 양팔짱을 끼고 단단히 몸을 감싸고 의자에 등을 기대고 있던 그는 코가 길었다.
그게 젊은이들의 생각이라면 엉터리들 뿐이라는 걸세.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실체에 기대지 않고서는 무엇인가를 건설하기란 불가능하지. 자네가 그런 세대라면 레토릭 뿐이고 계통도 없고 혼란스러운 영민한 바보만 넘쳐나겠지. 앞으로는.
잘 기억할 수는 없지만, 뭐 그런 말들로 나를 훈계조로 몰아붙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째서 그는 그토록 진지하게 나를 대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한 말은 한마디로 거짓말에 능통한 세대, 라고 우리를 몰아붙였으며 나는 그에게 맞다. 거짓말에 능통하며 죄의식없는 세대라고, 그리고 우리는 생산보다는 치장을, 기록보다는 편집이 상황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말하자면 엉터리의 힘, 이라고 할까.
나는 면접관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분들은 내가 입사한 이후에 그 이야기를 언젠가 꺼냈다.
떨어질 것을 예상한 것은 아니지만 - 그런 것을 예상할리 없으니까요. 떨어져도 상관없다고는 생각했었죠.
하고 싶은 말은 한다는 주의구만.
실은 그것들은 거짓말이었어요. 그러나 거짓말을 뱉는 순간, 아니 말을 뱉는 순간 진실처럼 들리지 않나요.
한 면접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괜찮아. 우리는 말하는 태도로 사람을 뽑지 말하는 내용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정작 타인에게 전달되는 것은 태도 뿐이야. 콘텐츠는 결국, 그 태도에 따라 마이너스가 되기도 하고 플러스가 되기도 하니까.
나는 거의 매일 글을 쓰고 매일 말을 한다. 그러나 자기 전에 대체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전혀 모르겠다. 하루 중 가장 슬플 때다. 그래서 나는 운다. 요즘은 조금 자주 그렇다. 정말로 놀랄 일이다. 그것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 아직까지 누군가를 위해 울어본 적은 없다.
너는 누군가를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야. 절대로 그런 사람이야. 연애가 끝나가는 동안 나는 이 말을 듣곤 했다. 연애가 지속되는 동안에는, 너는 서로 모를 때에 가장 친절한 것 같아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변명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언어를 이해하는 방식이 남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한글을 사용해왔지만 한 문장에 한 단어 이상의 잘못되고 부적절한 어법을 발견한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아주 진지하게 생각해왔다. 나는 지방에서 태어나 9살에 서울로 왔는데, 아마 그것 때문이 아닐까 라고 어린 시절 생각했었다. 나의 문자는, 그리고 내 발성을 통해 나오는 언어는 내 본질의 그것과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조금 크고 나서는 그것은 뭔가 잘못된 나의 신체 구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내 구강구조라든가 성대에 나있는 돌기나 종양같은 것들 후두에서 비강으로 올라가는 통로의 뒤틀림이나 귓속의 기관들에서 흘러나오는 이명들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너무도 많이했다.
그러니까 내 거짓말은 거짓말은 아닌 것이다. 지나버린 것이고 변해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내 언어는 아주 조금 전의 과거 일 뿐이다. 살짝 지나간 내 생각에서 그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아주 짧은 찰나에서만 살고 있다. 그게 나인 것이다. 1분 전이 나의 황금기이다. 나는 1분전을 늘 그리워한다. 나는 영원히 나의 퍼스낼리티가 공공성과 일치할 수 없으리라고 본다. 연애라는 것이 결국 그 둘의 만남이 아닐까. 회사 생활이 가능한 이유는 내 자아를 열지 않아도 상관이 없지만 연애는 자아를 개봉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내 자아는 개봉될 수록 진심이 드러나고 그럴 수록 차가워진다. 본질이 그런 것이다.
얼마 전 한 기업에 입사지워을 했다. 물론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신입으로, 그리고 그 회사에 입사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면접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류들도 가짜로 내었는데 받는 쪽에서는 당연히 그걸 알리가 없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까지 뭘했는가 물었을 때 나는 연애를 했다고 했다. 면접관들은 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도 진지하게 대꾸했지만 실상 저친구 약간 똘기가 있군 하며 합격자에서 멀어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뒤로 질문은 안 올 것이라 생각하며 면접관들을 하나씩 훑어보았는데 놀랍게도 코가 긴 남자가 거기에 있었다. 그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또 말이다. 다른 지원자에게 고개를 돌리지 않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달려들 것 같은 불편한 심기를 내뿜었다.
면접 후 그는 나중에 나를 따로 불렀다.
자네 정체가 뭔가.
저는 후강에서 비강으로 흐르는 똘기입니다, 라고 말했다면 거짓말이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를 올려다 보았다.
그런 식으로는 절대로 입사 할 수 없을 걸쎄. 어느 회사도.
나는 씨익 웃으며 돌아서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뭘 하는 사람인가요?
멈춰 돌아선 그가 말했다.
뭘 하는 사람으로 보이는데.
전문 면접관, 인 거 같은데요. 그게 직업인 사람.
내가 손을 흔들었다.
저도 같아요. 전문 입사 지원자죠.
이미지에만 매달리는 사람은 결국 그에 함몸될 수 밖에 없다.
어제 사실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라고 또 이야기를 또 할 기회가 있었다. 플롯을 배우는 문화센터에 나가서였다. 맙소사 바로 그 플롯말이다. 문화 센터가 있는 백화점 11층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적당한 직업에 아직 결혼을 안했다고 하자 애인이 있냐고 물었고 없다고 대답했다.
그 중 한 명이 조카를 소개시켜 주겠다며 넉살 좋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사양했다.
저는 사실 게이입니다.
그러자 상대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고 카페 속 공기가 젤리처럼 뭉쳐진 후 바닥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져내렸다.
나는 웃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정말인데.
누군가의 말처럼 보기와는 다르게,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 생각을 얘기한다. 그것은 물론 말하자면 거짓말인데 말하자면 진짜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