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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은

너는 좋은 이름을 가지고 있어.
아직도 나는 기억한다.
시간이 지나도 이제는 그 날 밤이라 부를 수 있는 그 날 밤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가끔 떠오른다.
그럴 때면 가슴 한 구석이 잔잔한 호수에 떠있는 작은 잎처럼 천천히 흘러간다.
몇 번이고 몇 번이나
온 몸이 흔들리며 밤을 지켜내던 그런 시기에
우연히, 서로를 스쳐지나간 것은 정말 다행이라 생각한다.
여전히 아무도 모르는, 우리 서로조차 고작 아는 것이라고는 그 날 밤의 기억이 전부여서
오히려 온전히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다행이야.
작은 개천을 건너가는 나를 바라보던 너는 손을 흔든다.
내 모든 사랑들이 깨어져버린
그 후를
너는 아직 버텨내고 있어.
너는 좋은 이름을 가졌기 때문에

싱글라이더

아무 때나 시간이 남으면 대학교 졸업영화제를 참석해보라. 
이런 영화들을 잔뜩 볼 수 있을 것이다. 
인물이 등장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벌어진 상황을 지켜보는 무위한 영화들..

영화는 압축의 예술이다. 시간과 공간일 기록할 수 있는 유일한 예술인데 
이야기를 펼쳐놓고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사건을 늘어놓는다면 전위예술이라 불러야 한다.

매우 지루한 영화였다.
공감할 관객이 있다면 분명 기러기 아빠거나 유학생 혹은 귀신 뿐일 듯.



밀정

 밀정을 보았다. 이틀 전에 본 암삼이 떠올랐다. 흠잡을 것이 없는 것은 밀정 쪽이고 마음을 두고 싶은 쪽은 암살이다. 밀정은 패를 내보이지 않았다. 승부가 중요하지 않는 노름판이었다. 암살은 적당히 속아넘어가주고 싶은 정감있는 동네친구와의 게임이었다. 
 밀정은 황옥이라는 인물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다. 그에 대해서는 역사저널 애청자인 나로써 들어 본 적이 있다. 일본 경찰인 동시에 독립운동가였던 사람. 훗날 독립 운동 혐의로 잡혀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스스로 '나는 독립 운동을 가장한 일본 경찰이다'라고 외쳤다. 그러나 김원봉은 '그는 훌륭한 의열단원이었다.'라고 증언했다. 황옥 그는 어느 쪽이었을까. 이쪽인가 저쪽인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경계인이었는가. 그 시절 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이 황옥과 같은 경계에 머문 사람이었다. 
독립 운동은 3.1 운동 이후에 격렬해졌지만 사실상 1940년대가 가까워졌을 때는 고작 2~300 명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는 이미 사라진 나라인 '조선'에서 태어났던 사람들이며 일제치하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느끼는 나라잃은 슬픔은 전혀 다른 것일 수 있다. 분노할 수는 있지만 독립이 올 것인가 하는 물음에는 부정적일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한 번도 독립국에서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덧 일본 자위대에 모집하기 위해 수천명이나 몰리는 것이 분노보다 이해가는 부분이 있다.
 일제 강점기를 다룬 작품에서 일본인보다 변절자를 가혹하게 다루는 이유는 굴욕외교를 외면하려는 마음도 숨어있다. 그들도 한 개인으로 보면 평범한 아버지이자 아들이고 친구였을 것이다. 해방이후 그들의 변절행위는 규탄받아야 마땅하겠지만 나라면 어땠을까. 역시 '정신'을 좀 더 높은 가치에 두기 때문이다. 

매치스틱 멘(2003)

 

 우선 이 영화 설정이 재미있다. 강박증, 결벽증, 광장공포증, 편집증, 말더듬증 거기에 틱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기꾼의 이야기다. 뭐라고? 맞다. 사기꾼이라고 했다. 걸어다니는 정신과 종합병원인 환자가 사기꾼으로 나온다. 그의은 타인을 속이는 죄책감, 불안감, 자기모멸감이 뒤섞여서 유발하고 있다. 이 영화는 이러한 정신질환을 유발하는 '사기'라는 직업을 가진 독신남의 치유기라고 볼 수 있다. 

 장르를 미리 이야기하자면 다큐멘터리나 멜로드라마가 아니라 코미디다. 그리고 그게 잘 먹히고 있다. 코믹범죄물로 흘러갈 것 같은 영화인데, 오래 전 사귄 여자친구가 낳았다는 딸을 찾게되면서 부성애 강한 휴머니즘으로 바뀐다. 딸을 맞이하게 되면서 로이(니콜라스 케이지)는 조금씩 삶의 활력을 찾게된다. 딸과 애정이 깊어지면서 이전과 달리 돈 버는 데에 이유가 생겼다. 그리고 마지막 한 탕을 성공한 후 돈도 프랭크(샘록웰, 제자이자 파트너)에게 모두 주고 손을 털고자 한다. 그리고는 이제 반전이 시작된다......

'사기'꾼은 '사기'를 당한다. 그 일을 계기로 스스로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 이런 반전에 몇몇 사람은 놀랐을 거다. 그러나 반전이 그리 중요한 영화는 아니다. 또 예측못할 반전도 아니다. 영화 중간중간에 ‘이들은 사기꾼 입니다.’ 리들리 스콧은 힌트를 주고 있다.  

제목은 왜 <매치스틱 멘>일까. 이 영화에 대해 검색하다가, 재미난 뉴스를 보았다. 미국 한 대학에서 ‘영화 속 흡연장면가 담배 욕구를 유발하는가’에 대한 실험을 위해 피실험자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과연 그럴만 한 것이, 이 영화에서 니콜라스 케이지는 참으로 많은 담배를 핀다. 담배는 로이의 불안한 심리를 대변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 곧 사라질 연기와 같은 '사기'를 연결해보아도 좋다.

 그런데 영화를 자세히 보면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담배를 피고 있다. 동료 프랭크, 정신과 의사, 돈줄갑부, 형사까지, 전부 담배를 피고 있다. 이들은 모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사기꾼이라는 것이다. 감독 리들리 스콧은 ‘담배’를 통해 이들은 모두 사기꾼이고 니콜라스 케이지를 공사!했음을 알려준다. 
 심지어 큰 건수를 시작하기 직전, 정신과의사 씬과 공항 씬의 편집을 통해, 파이프담배를 피는 정신과 의사와 공항에 나타난 담배피는 프랭크를 직접 연결하여, 담배 to 담배로 친절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담배불을 붙이는 성냥의 불꽃은 금방 밝게, 확 타오르지만 금새 스스로의 몸을 태워버리는 성냥깨비 같은 사기꾼들을 제목은 가리키고 있다. 그래서 matchstic 'men' 남자들인 것이다. 

이 영화는 사기꾼이 손 떼고 정착하는 영화다. 그에게는 위에 언급한 정신질환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심지어 믿었던 딸까지 사기꾼이였음을 알고, 제대로 공사 당한 로이(니콜라스케이스)지만 착실하게 일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면서 영하는 끝이난다. 

1년 후, 카페트 가게에서 일하는 로이는 카페트를 사러 온 딸(인척했던) 안젤라를 만난다. 남자친구와 함께 온 안젤라와 착실하게 일하는 점원 로이. 왜 치킨집이나 주유소가 아니라 카페트인가. 카페트는 안락한 집을 떠올리게한다. 당연히 정착을 의미한다. 그게 로이가 바라는 바다. 로이는 안젤라의 말대로, 좋은 사람이다. 그는 돈을 많이 벌었지만 금고에만 넣어둔다.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위해 쓸 지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기도 직업이라면 한 직업을 평생동안 죽으라고 일만한 한 중년의 남자인 것이다. 그렇기에 프랭크를 다시 찾아가 복수를 하거나 그가 아니라 안젤라와 만났는 지 이해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프랭크는 그의 바람대로 그 세계를 떠나버린 것이다. 더이상 매치스틱멘으로 짧고 불안정한 삶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안젤라가 "내 이름 말해줄까요?" 라고 묻자 로이는 대답한다.
 "아니. 네 이름 이미 알고 있잖아."
 씨익 웃는 안젤라가 말한다.
 "또 봐요 아빠!." 

 간단한 대화지만, 로이는 상대가 거짓말을 했어도 둘의 즐거웠던 기억을 믿어보겠다는 뜻이다.
 퇴근해서 집으로 가면 자신을 위해 요리하는 아내와 곧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며 행복에 잠긴다.

 물론 현실은 이와 다르다. 뉴스에서 범죄자를 보면 전과 1범은 거의 없네. 거의 재범죄자들이다. 그들도 처음에는 1범이었을 텐데 격언을 빌려 말하면, 안 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왜 그러한가는 내가 밝힐 문제는 아니고...로이처럼 손을 털기도 힘들고 여러 사회적인 제약으로 어려움도 많은 것이다.

 헐리우드 엔딩이지만 설득력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로이가 착한 사람이고 관객들은 착한 사람이 행복하길 바란다. 삶이 온전히 정상적으로 굴러가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장르론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그렇게 범죄(사기)를 쉽게 끊었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본성이기 때문이다. 일단 몸이 첫번째, 돈은 그 다음일 뿐이다. 좀 엉뚱하게 영화를 결론내자면 자신의 본성과 맞지 않는 일을 하면 몸에 병이난다는 것, 그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바다. 






조류 인간(2014)

설마 이정도 일 것이라고는...

우선 <조류인간>의 주제를 보자. 왜냐하면 감독이 이 주제에 함몰되어버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류 인간'이 있다. 그 인간은 '나와 다르기 때문에' 나는 잘 이해하지 못했고, 오해했으며, 그러다보니 매도했고 폭력적으로 대하기도 했을 것이다. 조류인간은 '자신을 이하지 못하는' 상대와 대화를 시도하기도 했오, 더 많은 이해를 바리기도 했다 .그러나 실패했고, 조류인간에서 조류로 돌아가고자 떠나버렸다.
감독은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지 자세를 말하고자 한다. '나와 다른 타인'을 설명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조류인간이라는 판타지를 만들었다. 문제는 장르가 아니다. 설정은 아무리 말도 안되는 것이라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이끌어가는 방식이 올바르냐다. 그런데 그게 안된다. 감독은 주제의식 때문에 시나리오를 망쳤고 연기가 엉망이 되어버렸다.

김정식씨의 초반 연기는 매우 좋다고 생각했다. 성량도 좋고 발음이 분명해 보였다. 캐릭터가 분명히 잡혀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점차 보면서 인물들의 대사가 조금 뻔하다 혹은 자기 대사를 위해 인물들이 머뭇거린다는 게 보였다.

몇몇 장면을 살펴보자.

소설가는 가출한 딸을 잡아 살았던 고모집으로 다시 끌고온다. 딸의 책장을 뒤진다. 
"공부하는 애가 교과서 하나 없냐"
딸을 면박하고 고모와 동생에게 제대로 감시하지 않은 책임을 묻는다. 그렇게 멋대로 말해버리는 뒷모습을 보고 동생이 말한다.
"극단적으로 순수한 건지,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건지, 나도 이제 헷갈린다."
고모가 말한다.
"정석이가 순진해서 그래. 나쁘게 생각하지마."
"누나, 40살 넘어서 순진한 건 나쁜 거에요."

이 대사 이후에 감독이 편집을 하지 않은건가? 갸웃거렸다. 도무지 필요가 없는 장면이었고 더군다나 고모와 삼촌(동생)의 대사는 부차적이게 들렸고, 붕떠있는 장면이 되어버렸다. 맥락을 상실하게 되고, 사실감도 없자 감독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러한 장면이 꽤나 많다는 것이다.

여러 장면에서 이렇게 직접적으로 ‘대사’를 던진다라고 보이는 장면을 찾을 수 있다. 소설가를 통해 딸을 찾으려는 회장도 '저런 사람을 회장역으로 캐스팅했군,'이런 느낌을 받았고 그 하수인 두 명과 권총을 들고 쫓아온 여자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예민할 수도 있겠다. 소설가의 초반부와 소이씨의 캐릭터는 나쁘지 않았다. 중반부까지는. 그들이 행동하는 바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새가 된 아내를 알게되었을 때 출판사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나는 누구냐, 소설가는 묻는다. 굉장히 문학적이다 반대로 영화적이지 못하다라는 느낌이 강했다. 문학적이라는 것이 꼭 나쁘지는 않다. 다만 영화적이지 않다는 것은 확실히 단점이 크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어둡고 경직된 이유는 판타지적 장르도 아니고 주제 때문도 아니다. 연출력 때문이다. 지나치게 작위적이기 때문에 인물들이 생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봐도 주요 인물들을 제외한 배우들은 눈치 보며 자신의 대사가 오기를 기다리는 듯 보여진다. 감독의 작위성을 본다. 작위성은 작품을 날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있다. 문제는 ‘주제’ 날 것이 아니라 형식의 날 것 - 즉 미완성으로 보여진다. 

김기덕 감독의 작품을 날 것,의 맛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신원식 감독과는 다른 의미다. 김기덕은 말하자면 생선회와 같이 바로 먹을 수 있는 날 것이다. 이것에서는 기호의 차이가 있을 수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음식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신원식 감독의 <조류 인간>은 생고기다. 이건 기호의 차이가 아니다. 인간이냐 야만이냐, 즉 음식을 먹으려고 기다렸다가 낭패만 보는 기분이 든다. 새로운 음식(영화)는 신선한 고기를 말하지 살아있는 고기를 말하지는 않는다. 감독은 반드시 익혀서 음식을 내놨어야 한다. 

교차편집으로 진행되는 영화인데 결과적으로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조금만 보면 이를 알아챌 수 있다. 교차편집을 통한 효과 - 호기심을 갖게 만들지만 이런 판타지 영화의 경우 현실감을 떨어뜨리고 있다. 어쩌면 열악한 제작환경으로 인해 장면이 되기에는 턱없이 짧은 이야기를 장편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영화는 딱 단편영화로 만들만한 이야기거리다.

전체적으로 실패한 이 영화가 꽤나 좋은 평점을 받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좀 뻔해보이는 주제 만으로, 그 가상한 노력이 인정받을 수는 있지만 그러면 큰 발전이 없다. 아직 한 편 밖에 보지 않았으나 이 감독은 어쩌면 극작가가 되었어야 맞을 지도 모른다. 영화적인 것이 무엇인지, 또는 연출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인디영화의 열악한 환경? 글쎄.

 설정에서 멈춰버린 것이 아쉽다. 중반부 이후 소설가의 캐릭터가 사라져버린 것을 보아라. 그런 의미에서 조류인간은 미이케다카시의 <중국의 조인>가 되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판타지의 중요한 점은 설정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의 능숙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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